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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4. 14世 〉1. <요재공>장사랑공휘숙묘갈명(將仕郎趙公諱淑墓碣銘)
1. 문헌 목록 〉14. 14世 〉3. <요재공>진용교위행의흥위부장임진의병장조공휘정의순국비(進勇校尉行義興衛部將壬辰義兵將趙公諱廷義殉國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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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요재공>고의사진용교위행의흥위부장부곡공휘정의비명(故義士進勇校尉行義興衛部將釜谷公諱廷義碑銘)
故義士進勇校尉行義興衛部將釜谷公諱廷義碑銘 以草野匹夫不忍見宗國之被寇倡義赴難不忘喪元而畢竟至於軆魄不收者往往遺衣履藏之一處春秋致芬苾焉釜谷趙公是其一也藏在寶城龍門面德山洞冑峯下負乾之原配淑人淸風金氏護軍以漢女祔公墓上此實公之桑梓鄉也後孫將伐石以表其封域使相勳來微銘於章燮章燮安敢以此爲無於禮而辭之此盖出於哀痛迫切不能自己之至情而蓋亦其以義起之也昔黃帝之登仙也群臣以衣冠劒舄葬于喬山人情之於君親無古今之異者此可見矣謹按其遺事曰公以嘉靖丙午生孝友仁慈天性也幼有丈人之志以武科出身進勇校尉行義興衛部將當丁酉再亂以爲君報國之志傳檄道内與主倅安公弘國同盟誓死戰于安骨浦諸船皆遁公獨以一船兵當敵十艘三戰三捷安公中丸而死公以餘兵鳴皷益前然奈衆寡之不敵何力盡死之盖 月 日 也公諱廷義字義之號釜谷系出玉川以府院君元吉爲顯祖子瑛官典工判書是生斐永樂丁酉中司馬遭艱廬墓三年高祖纘谷城縣監曾祖由信參奉祖之漢海南縣監考瓘忠毅校尉至兵曹佐郞贈兵曹參判妣淑夫人坡州廉氏參奉宇女公生二子長雲龍僉中樞次季龍雲龍生藎弼公弼熙弼誠弼季龍生舜弼舜立舜弼舜立當丙子亂與牛山安公邦俊擧義赴礪山聞講和痛哭而歸曾玄不盡錄噫糾義敵愾雖未能斫盡群賊其風聲所激徃徃民知自守而尊周思漢之義終有殄滅不得者其功不亦偉哉銘曰早辭官守囂囂畎畝及聞亂作義膽陡起主倅志同與之共事安骨之戰連日三捷彼衆我寡終難與敵身爲彼殺節莫我奪炯炯此志可質神鬼我銘昭之以詔千禩 宗後生 章燮 撰 고의사진용교위행의흥위부장부곡공휘정의비명(故義士進勇校尉行義興衛部將釜谷公諱廷義碑銘) 초야의 필부로써 종국의 떼도적입음을 차마 볼 수 없어 의병을 모아 전쟁에 나가 두목이상함을 잊지 않고 마침내 체백도 거두지 못한자는 남은 의복과 신발을 한곳에 장사하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게 되니 부곡조공은 이 그 하나이다. 묘는 보성주봉리덕산동투구봉하건좌원이니 배위는 숙인청풍김씨 호군 이한(以漢)의 녀니 묘는 공묘상에 상하영으로 있으니 이는 공의 고향이다. 후손이 장차 돌을 깎어 그 봉역에 세우게 되여 상훈(相勳)을 시켜 비문을 장섭(章燮)에게 청하니 장섭이 어찌 감히 이것이 예절에 없다고 사양하리오. 이것은 대개 애통박절하야 능히 스스로 마지못할지경에서 나온 것이니 대개 또한 의리로써 일어난지라. 옛적 황제시의 등선때에 군신들이 의관과 칼과 신발로써 묘산에 장사하였으니 인정이란 군친에 고금이 다름이 없음을 여기에 보겠도다. 삼가히 그 유사를 알아보면 공이 가정병오에 나시여 효우인자는 천성이라. 어려서도 어른의 뜻이 있었고 무과로써 출신하야 진용교위 행 의흥위부장을 하시고 정유재란을 당하야 임군을 위하고 보국하는 뜻으로 도내에 격문을 전달하고 본군수안공홍국(弘國)과 더불어 죽기로써 맹세하고 안골포에까지 가서 싸워 다른 배는 다 도망쳤어도 공은 홀로 한배군사로 수십척의 배를 당적하고 세번 싸워 세번 이겼으나 불행하게도 안공은 적탄에 맞어 산화하시고 공은 남은 군사로써 북을 울리고 앞으로 나갔으나 기세가 모자라 당적못하였으니 어찌 하리요 힘이 다하여 전사하시다. 공의 휘는 정의(廷義)요 자는 의지(義之)요 호는 부곡(釜谷)이니 옥천에 태어나 부원군 원길로 현조를 삼으니 그 아들 영(瑛)은 벼슬이 전공판서요 이에 비(斐)를 나으니 영락정유에 진사하시고 어머니상을 당하여 여묘三년 하셨고 고조 찬(纘)은 곡성현감이요 증조 유신(由信)은 참봉이요 조 지한(之漢)은 해남현감이요 고 관(瓘)은 충의교위로 병조좌랑에 이르고 병조참판을 증직받았다. 비는 숙부인파주염씨참봉 우(宇)의 녀라. 공이 二子를 나으시니 장은 운룡(雲龍)이니 첨지중추부사요 차는 계룡(季龍)이니 운룡은 신필, 공필, 희필, 성필(藎弼, 公弼, 熙弼, 誠弼)을 나으시고 계룡은 순필, 순립(舜弼, 舜立)을 나으시고 순필, 순립이 병자란을 당하야 우산안공방준으로 더불어 거의하야 여산에 가서 강화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증손현손은 기록하지 않는다. 슬프다. 적개지심으로 의병을 모아 비록 능히 군적을 다 소탕하지 못했으나 그 바람소리 격동한 바에 왕왕히 백성이 알어 스스로 지키고 존주사한의 의로 마침내 멸망시키지 못할지나 그 공이 또한 크지 않으랴. 명하여 가로되, 일찍 벼슬을 사양하고 전원에서 호젓이 살았도다. 난리 났단 소문 듣고 오른 담기로 군사 일으켰다. 본군수가 뜻이 같으니 더불어 같이 일하도다. 안골포싸움에 연일 세번 싸워 이겼도다. 저놈은 많고 나는 적으니 마침내 적과 상대 되지 않도다. 몸이 저놈에게 피살되었으니 절개를 내에게 아스지 못하도다. 흥분하여 빛나는 이 뜻을 가히 귀신이 믿을지로다. 나의 명이 밝아써 천세에 빛나리로다. 종후생(宗後生) 장섭(章燮) 찬(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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